이삭과 부스러기
2026년 8월 16일 성령강림 후 열두번째주일 성서일과 가해
맑은물 전체 예배 설교
복음서 ⎮ 마태복음 15:10-28 (새번역)
- 예수께서 무리를 가까이 부르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기가 심지 않으신 식물은 모두 뽑아 버리실 것이다.
-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 먼 사람이면서 눈 먼 사람을 인도하는 길잡이들이다. 눈 먼 사람이 눈 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 베드로가 예수께 "그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니,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는 줄 모르느냐?
-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러나 손을 씻지 않고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간청하였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 그러나 그 여자는 나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 그 여자가 말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 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오늘은 전체 강의가 있어 말씀을 아주 짧고 간략하게만 살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 말씀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구약의 어떤 여인과 많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누구였을까요? 바로 룻입니다. 이름 없는 가나안 여인이 보여주는 믿음이 구약의 이방 모압 여인 룻의 신실함과 헤세드와 많이 겹쳐져 보입니다. 몇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배경입니다.
룻기 이야기의 배경은 사사시대 말기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암흑기에 신실함과 헤세드를 보인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모압사람 거기다가 여자입니다. 룻이 보여주는 신실함과 헤세드는 사사시대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정말로 파격적입니다. 정말로 깜깜하고 암흑과 같은 시대에 반짝반짝 빛나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 인물이 바로 모압 여자 룻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가나안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는 일부러 가나안여자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방인에다가 여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무시와 혐오의 대상이고 취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결론부에 가면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전후문맥상 바리새파 사람들과 정결함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문맥 베드로와 후문맥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이 적은 자야”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마태의 복음서에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칭찬을 받은 사람은 단 두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과 로마의 백부장에게만 쓰고 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자들마저도 “믿음이 적은 자야”라는 이야기를 듣는 상황에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칭찬을 받는 사람이 바로 예상 밖의 인물 가나안 여자입니다.
둘째는 두 여인들이 보이는 반응입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짐만되는 어머니 나오미 곁을 지킵니다. 동일민족으로 구성된 작은 마을에 이방인으로 여자로 사는 것은 정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벽이었습니다. 무시와 혐오, 경계와 따돌림을 일상으로 견디는 삶을 살았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전혀없는 과부 두명이 먹고 살기 위해 이삭을 주으러 나갑니다. 부스러기로 삶을 연명하는 것이지요. 룻이 만난 삶의 벽은 참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모압여자 룻은 신실하게 헤세드의 삶을 살아갑니다.
가나안 여인은 응답이 없는 외침을 계속합니다. 보통 예수님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고 구원해주시는 분이신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들은 척을 안하십니다. 응답없는 기도와 외침의 삶을 반복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제자들의 반응은 귀찮다는 듯 “저 가나안 여자 좀 어떻게 해서 보냅시다. 너무 시끄럽고 방해되네요.”였습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예수님 도와주십시오”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대답이 차갑게 들립니다. “자녀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누가 이런 무시를 받으면서 도와달라는 간구를 계속 할 수 있을까요? 가나안 여자가 만난 벽은 참 넘기 어려운 벽이었습니다. 응답없는 벽, 사람들의 무시와 경멸, 정작 예수님의 무시 벽은 넘기가 참 어려운 벽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은 이 모든 벽을 뛰어넘습니다. 아니 그 벽을 무너뜨립니다.
무엇이 모압 여자 룻으로 하여금 그렇게까지 신실한 사랑과 한계를 넘어서는 사랑의 자리로 나아가게 했을까요?
무엇이 가나안 여자로 하여금 반응 없음과 무시와 차별을 넘어서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했을까요?
셋째는 두 여인의 믿음입니다.
룻은 어머니 나오미를 따르며 고백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실패한 것 같은 나오미의 인생 안에서 룻은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을 붙들고 살겠다고 고백하며 어머니의 곁을 끝까지 지킵니다.
보아스가 룻을 향해 “그대가 어질고 착한 여인임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데 여기에 어질고 착한 여인의 원문상의 의미는 여장부라는 의미입니다. 천사가 기드온에게 찾아와 기드온을 불렀던 “큰용사여”와 같은 단어입니다. 남자도 감당못할 믿음을 보여주었기에 보아스가 룻을 향해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여자는 자녀에게 줄 빵을 개들에게 주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무시의 말에 그렇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개들도 주인의 돌봄 안에 있다고 주인의 책임 안에 있는 존재라고 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답하십니다. 개에게 줄 빵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에 가나안 여자는 그 개도 주인의 개입니다라고 답을 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룻은 에쉐트 하일이라는 큰 용사의 여인으로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어둡고 깜깜한 시대를 밝히는 빛이 됩니다. 그 빛이 바로 모압사람 여자 룻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해서 자기 안으로 가두어 버리고 있었고, 제자들은 아직 온전한 믿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보여주고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칭찬을 들은 사람은 가나안 여자였습니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큰 교회는 많지만 예수님을 보여주는 교회는 드뭅니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어둡고 깜깜한 시기에 빛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은 늘 변두리에서 의외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답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할 만큼 했다고 하는 시점에서도 한 번더, 한 걸음 더 사랑으로 반응하는 사람들.
나의 자격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붙드는 사람들.
부스러기라도 그 은혜를 붙드는 사람들을 통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맑은물은 상호돌봄의 공동체입니다.
믿음을 드러내고, 섬김을 실천하고, 공동체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은 특정 리더나 오래되거나 앞에 선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믿음과 헤세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맑은물에 룻과 같은 가나안 여인과 같은 에쉐트 하일의 사람, 큰 믿음의 사람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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