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이야기/함께 나누는 말씀

샛별목장 7/26 말씀나눔

ioreusogo 님의 블로그 2026. 7. 25. 22:12

본문 : 마태복음 13:31–33, 44–52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밭에 감추인 보물에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보물을 발견하자 기뻐하며 돌아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어떤 상인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고, 역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보물 비유, 가진 것을 다 판다는 비유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빼앗길 수 없는 것. 가진 것을 다 내어주더라도 끝까지 붙들고 싶은 것. 존재의 근거가 되는 것.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는 어쩌면 바로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설명하실 때마다 반복해서 '알아차림'과 '발견'을 강조하십니다. 겨자씨는 자라기 전에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고, 누룩도 부풀어 오르기 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보물은 밭에 감추여 있고, 진주 역시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들의 공통된 전제는 '발견하면'입니다. 보물을 발견하면,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그때 비로소 모든 것을 팝니다. 그래서 이 “발견”의 관점으로 제가 묵상한것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복음서 말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등장하실 때마다 이런 표현이 되풀이됩니다. "예수께서 서 계시나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더라."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더라." 막달라 마리아는 그분을 동산지기로 여겼고,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낯선 여행자로 여겼으며, 갈릴리 바닷가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가는 심지어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돌아오셨을 때, 정작 그분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옛 사람이 죽고 살아났을 때 그 변화가 얼마나 극적인지, 이 장면들은 보여줍니다. 예전과는 완전히 새로워진 존재는 예전 기준으로는 알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된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우리 역시 변화된 존재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존재,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된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우리의 새로운 생명을 좀처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새로운 생명은 마치 감추인 보물처럼 우리 안에 숨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보물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 이유.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다른 것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스스로 진짜 나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옛 사람, 육신, 자아라고 부릅니다. 옛 자아는 살아오며 고착된 습관들, 끈질기게 달라붙은 애착과 중독, 욕망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결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것에 의지해왔고 그것은 때로 우리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자기중심적인 그 모습으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충만함을 도무지 담아낼 수 없다고 성경은 여러 차례 증언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옛 사람은 더 이상 우리의 참된 정체성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옛 자아의 목소리를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던 것처럼, 옛 자아는 한 번 알아차렸다고 해서 조용히 물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습관과 죄의 관성을 따라 끊임없이 되살아나 우리에게 자기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세상 끝날 그물에 가득 담긴 고기를  좋은 것은 담고 나쁜 것은 버린다고 하십니다. 저는 이 비유를 이렇게 읽고 싶습니다.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것이 드러날것이고 결국 남는 것은 영원한 것뿐이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옛 자아가 추구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성공도 인정도 소유도 쾌락도 잠시 우리를 만족시킬 수는 있지만 끝내 다른 욕망과, 다른 불만과 고통을 만들어 결국 우리를 쉬게 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오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영원한 만족과 기쁨, 충만함과 안식이 있습니다. 반면 옛 자아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붙드는 많은 것들은 영원한 실재가 아니라 그것의 그림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옛 자아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를 멈춰야 합니다.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발견하고, 그 생명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옛 자아를 더 이상 나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 우리 안에 감추어진 생명을 삶의 중심에 두는 것. 그것이 바로 보물을 발견한 자가 모든 것을 팔아 밭을 사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 발견의 기쁨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제자들의 기쁨과도 닮아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울음을 멈추고 "랍오니!"라고 외쳤습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들며 "주님이시다!"라고 외쳤고, 도마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예수님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이미 눈앞에 계셨던 예수님을 비로소 알아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발견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 전체를 뒤흔드는 기쁨입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확신으로 바뀌며, 방황하던 삶이 방향을 얻는 기쁨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기뻐하며 가진 것을 다 팔았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기쁨으로 옛 삶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새로운 삶은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된 그리스도의 생명을 알아가고, 그 생명과 점점 하나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기도와 삶의 실천을 통해 이뤄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보물이 있는 밭을 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일차적으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은밀하게 기도하라는 뜻이겠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읽힙니다. 숨어 계시는 아버지. 기도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신 하나님을 찾는 일입니다. 세상의 소음과 나 자신의 소음이 잠잠해지는 곳에서 우리는 마침내 그분을 발견합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보물이, 우리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일치하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만납니다. 화를 내고 싶은 순간, 인정받지 못한 순간, 두려움 때문에, 게으름 때문에 다 접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채우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옛 자아는 끊임없이 자신이 진짜 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목소리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된 그리스도의 생명과 일치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돌보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물론 살아온 배경과 성격에 따라 개인차는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짜증나게 굴 때 소리를 지르는 것은, 결국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나입니다. 사랑의 능력보다는 지배하고 싶은, 못나고 왜곡되고 왜소한 내 모습입니다. 시원하게 화를 내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감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아이에게 미안함만이 남게 됩니다. 그런 감정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내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내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옛 자아가 나를 주장할 때 그것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것.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나를 발견하고 그 생명과 일치하는 것. 아이를 연민과 인내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하고 돌볼 수 있는 것은, 내 힘으로 만들어 낸 이상적인 자아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 사람으로서의 나입니다.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이것은 단순히 화를 참거나 양육의 기술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던 일이었습니다. 옛 자아에 아무리 많은 것을 덧씌워도 존재 자체는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훈련이 쉽고 즉각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많은 날, 저는 여전히 옛 자아의 목소리에 지고, 소리 지른 후에야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발견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걸어가는 길에 가깝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견주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것만이 영원하고, 그것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감추어진 그리스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실패도, 어떤 상실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감추어 두신 보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여정이자, 그 보물이 온전히 드러날 그날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라도 얻고자 하는 것.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새롭게 된 나. 그 기쁨, 그 완전함, 온전함, 충만함, 만족. 그것을 누리고.놓치지 않는 저와.여러분 되길.바랍니다


요약.

하늘나라 = 발견하는 것. 다 팔아서라도 얻고자 하는것 . 그게 뭔가

.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발견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우리의 존재를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보물은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함께 변화된 우리 라고 생각하고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옛 자아 때문이다.

하지만 옛 자아는 영원하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와 함꼐 변화된 우리의 존재만이 영원할 것이다. 영원한 것만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보물을 발견하기를 힘써야 한다. 이 보물은 이미 주어져 있다. 이 보물은 참된 기쁨과 만족을 준다.

하나님을 찾는 기도와 옛 자아와 동일시 하지 않고,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워진 나와 일치시키는 삶에서의 훈련은 가진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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