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6일 성령강림 후 아홉째주일 성서일과 가해
가정교회 예배 말씀
천국은 마치
마태복음 13:31-33, 44-52 (새번역)
-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된다. 그리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올랐다."
………
-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
-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린다.
- 세상 끝 날에도 이렇게 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사이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서,
- 그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니,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것들을 모두 깨달았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예" 하고 대답하였다.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는 누구나, 자기 곳간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인사
이번주 무지! 많이! 엄청! 더웠죠?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랍니다.
오늘도 가정교회로 모여 함께 예배하고 대화하고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기다릴만한 충분한 이유와 가치가 있나?
지난 주일 우리는 가라지비유(마 13:24-30, 36-43)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이미 왔는데, 세상은 이모양인가?, 좋은 씨를 뿌렸는데 왜 밭에 가라지가 같이 자라는가?”하는 것이 우리의 물음이었습니다.
그 물음에 예수님은 덤덤하게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고 답하십니다. 스스로 심판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은 어쩌면 “그렇다면 그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우리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 질문에 오늘 예수님은 다섯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해주십니다.
지난 주에 “가라지를 뽑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면 이번주의 말씀은 “기다리고 남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3장의 전체구조.
본문의 내용으로 바로 들어가기 전에 마태복음에서 13장의 위치와 13장의 전체구조를 함께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에는 5개의 설교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세오경이 5권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마태는 5개의 설교집을 배치하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모세를 통해 읽어가길 의도했습니다.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 5:1-7:29/ 산상수훈
마 10:1-42/ 파송설교
마 13:1-52/ 하나님나라의 비유
마 18:1-35/ 공동체 설교
마 23:1-25:46/ 예루살렘 설교
마태는 5편의 설교집을 좌우가 대칭되게 구조를 짜고 13장의 하나님나라 비유를 가장 중앙에 놓고 있습니다. 그런 구조를 통해 마태는 예수님의 모든 사역과 가르침은 결국 하나님나라를 가르치고 드러내고 증거하기 위함임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나라의 비유는 성공의 절정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11장 12장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세례요한은 의심하고, 기적을 많이 베푼 마을에서는 회개가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고, 이제는 의도적으로 적대감을 나타내며, 가족들 조차 미쳤다고 오해하고, 예수를 죽을 모의를 하는 상황 가운데 들려지는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나라의 비유입니다.
의심, 무반응, 거부, 오해, 살해모의가 짙어지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하며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나라는… 이라고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증거하십니다. 겨자씨의 작음과 누룩의 숨겨짐이 이런 배경에서 읽혀지면 그 의미가 더 짙게 다가올 것입니다.
13장의 또 재미있는 구조는 공간의 이동이 주는 청중의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13: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서, 바닷가에 앉으셨다.
13:36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를 헤쳐 보내시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집-바닷가-다시 집으로 이동하면서 13장에 나오는 7개의 비유를 두개의 장소와 두부류의 청중으로 나누어 놓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와 누룩 비유는 바닷가에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모두를 향해 말씀하신 것이라면 밭에 감추인 보물, 진주, 그물 비유는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제자들에게 들려 주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면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 비유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받은 하나님의나라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를 드러내는 이야기이고 그물 비유 또한 너희도 안심하지 말아라고 하는 경고의 이야기입니다.
7개의 비유와 마지막에 들려주는 율법학자의 곳간 이야기는 각각 짝을 이루는 이야기와 서론과 결론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론/ 씨 뿌리는 자의 비유(3-9, 18-23): 말씀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후에 등장하는 비유를 듣는 방법에 대한 ‘비유에 대한 비유’로 읽습니다.
첫째 짝/ 가라지(24-30) + 그물(47-50): 섞여 있음과 마지막에 가려냄.
둘째 짝/ 겨자씨(31-32) + 누룩(33): 드러나지 않는 작은 시작과 압도적 결말.
셋째 짝/ 밭에 감추인 보물(44) + 값진 진주(45-46): 발견과 전부를 건 교환.
맺음/ 율법학자 곳간지기(51-52): 비유를 깨달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렇게 전체를 놓고 보면 13장의 하나님나라 비유가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맥락에서 하나님나라 비유가 들려지고 있고, 13장의 각각의 비유가 통합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하는지가 보입니다. 각각의 비유도 의미가 있지만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각각의 비유가 가지는 의미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나라의 이야기는 반대와 위협 속에서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나라는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미약하게 시작합니다. 우리의 기대와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의나라는 시작되고 진행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든 것을 뒤집고 압도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마지막과 끝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 날에는 분명한 심판이 주어질 것입니다. 들려지는 하나님나라 이야기 속에서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하나님나라를 얻기 위해 전부를 걸고 하나님나라를 소유할 것이고 결국에는 자신의 곳간을 열어 나누어주고 이야기하고 증거하는 사람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나라를 부요하고 크고 화려하고 힘있고 견고하고 안정적이고 확실한 어떤 것으로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하나님나라의 비유는 그대들의 기대와 상상을 바꾸라는 도전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고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자비하며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이루고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이들에게는 하나님나라의 이야기는 작아보여도 드러나지 않아도 모호하고 불안정하여도 애쓰고 힘들어도 이것이 진짜다. 견디고 기다려라는 위로의 메시지이자 계속 그 길을 걸으라는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하나님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그 나라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우리는 하루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들려주는 하나님나라 이야기에 조율된 삶이길 바랍니다.
전체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각각의 비유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지면과 시간 관계상 5개의 비유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겨자씨 비유-이 나라는 왜 이리도 초라한가?
예수님은 겨자씨를 말씀하시면서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겨자씨보다 더 작은 씨는 있습니다. 우리가 티끌을 이야기할 때 아주 가볍고 하찮은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하찮은지 값을 매기거나 무게를 재지 않듯이 겨자 씨는 아주 작은 씨, 보잘것 없고, 작디작은 것을 나타내는 관용적인 말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 안에 하나님나라가 있습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 안에 하나님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작디작은 겨자씨를 심었는데 나무가 되어 새가 깃듭니다. 사실 겨자는 나무가 아닙니다. 다년생 나무가 아니라 1년생 풀입니다. 하지만 봄에 씨를 뿌리면 순식간에 자라서 여름이면 키가 2-3미터가량 자랍니다. 최대 4미터까지 자랄 정도로 커집니다. 줄기가 굵어지고 가지가 뻗어서 제법 나무처럼 형태를 갖춥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나무라고 표현하시고 새들이 깃든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십니다. 나무에 새가 깃드는 것은 구약에서 제국의 이미지와 제국의 그늘 아래 사는 백성을 나타내는 은유입니다.
에스겔 17:22-23/ 주님이 백향목 어린 가지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시니, 온갖 새가 그 가지에 깃든다. / 회복될 이스라엘 왕국의 모습.
에스겔 31:3-6/ 앗시리아는 레바논 백향목, 공중의 새가 그 가지에 깃들었다. / 앗시리아 제국.
다니엘 4:10-12, 20-21/ 느부갓네살이 본 큰 나무, 공중의 새가 그 가지에 깃든다. / 바벨론 제국
나무에 새가 깃드는 이미지는 나무는 바로 제국을 상징하고 새가 깃드는 것은 제국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뭇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겨자씨가 자란 풀을 나무라 부르시며 제국의 이미지를 덮습니다. 백향목이 아니라 텃밭의 흔한 잡초 같은 아주 작은 겨자씨 풀이 왕국을 이루고 백성들을 불러 모읍니다. 제국의 이미지를 패러디해서 제국의 상징을 전복시킵니다. 힘있고, 돈있고, 능력있고, 견고하고,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이는 제국이 아니라, 볼품없고, 작고, 가난하고, 모호하고, 힘없고, 초라하고, 불안정한 겨자씨로 시작한 왕국에 뭇백성들이 깃들고 터를 잡고 머물 집이 됩니다.
갈릴리의 청중들은 어쩌면 백향목으로된 하나님나라를 기대하고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강력한 군대와 부요한 나라를 상상했을 테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오시고, 갈릴리의 변두리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시고, 종교권력과 국가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겨자씨 같이 볼품없이 그리고 텃밭의 잡초같은 모습으로 하나님나라가 나타납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누룩비유-하나님나라는 왜 보이지 않는가?
겨자씨비유와 같은 쌍으로 묶여있는 비유입니다.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은 누룩과 같습니다. 시간이지나 마침내 부풀어 올랐습니다.
누룩은 아주 작은 양이지만 밀가루와 반응하여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보이지 않게, 조용하게, 은밀하게,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예수님의 누룩비유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도발적입니다.
먼저는 누룩입니다. 누룩은 당시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쓰이는 표현이었습니다. 유대랍비문헌에서는 누룩이 발효의 과정에 쓰이는 것으로 발효는 부패시키는 것이기에 악한 것의 일종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무교절 규정에는 누룩을 제거해야 했고, 주님께 드리는 곡식 예물에도 누룩을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거룩한 것에는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의 용례에서도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그리고 헤롯의 누룩을 경고하셨고, 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한다며 악한 것과 누룩을 같은 선상에 두고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부정적이고 배제되어야 할 누룩을 하나님나라의 이미지로 삼으십니다.
다른 한가지는 여자입니다. 당시 문화에서 종교적인 가르침에서 주인공이 여성으로 등장하는 것이 좀 파격적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잘 찾아보기 어렵고 스캔들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누룩과 여자를 통해 예수님은 청중들의 생각과 상상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대와 마음을 뒤집어 놓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누룩과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하는 것은 청중들에게 도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섞어 넣은으로 사용된 문장을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직역을 하면 “여자는 누룩을 가루 속에 감추어 넣었다”가 됩니다. 하나님나라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의 형태는 ‘없음’이 아닙니다. ‘숨겨져 있음’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숨겨져서 은밀하게 소리없이 일합니다. 어느순간 마침내 밀가루 온통 전체가 부풀어 오르듯 하나님나라는 그렇게 드러나고 나타납니다.
당시 사회에서 거룩함은 분리입니다. 부정한 것을 피해서 물러서고, 담을 쌓고, 섞이지 않는 것이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정한 이미지의 누룩과 가치있게 여겨지지 않던 여자라는 주인공과 밀가루 속에 감추어져 있는 누룩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 속에서, 세상 안에서 함께 뒹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도발적으로 전해주십니다. 물러서고 담을 쌓고, 경계를 짓는 거룩함이 아니라, 스며들고 함께하고 같이 뒹구는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거룩함을 말씀하십니다.
밭에 감추인 보물과 진주 비유-하나님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기쁨으로 전부를 건다.
보물과 진주 비유는 무대와 청중이 바뀌었다고 앞서 13장 전체를 살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두 비유는 집 안에서 제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예수님을 따라 나선 이들, 예수의 길을 걷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소유했는지 알고 있지?”라며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두 비유는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서, 산다가 두번씩 반복되고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한 사람은 밭일을 하다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고, 한 사람은 찾다가 찾다가 값진 진주를 발견합니다. 직업도 다르고 삶의 환경도 다르고 발견방식도 다 다릅니다. 그러나 발견한 뒤 나타나는 반응은 같습니다. 전부를 팔아서 삽니다. 소유합니다.
하나님나라가 발견되는 방식은 여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태신앙으로 신앙 안에서 자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청소년, 청년, 성인기에 하나님나라를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의 신앙체험은 느리고 완만하게 나타나는 반면 어떤 사람의 신앙체험은 급격하고 뜨겁게 나타나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를 발견한 사람들의 반응은 같습니다. 전부를 걸어서 바꿉니다. 전부를 걸어서 소유합니다. 가장 가치있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보배로운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바꿉니다. 하나님나라는 모든 것을 주고서라도 소유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내 인생을 걸고, 내 생명을 걸어도 아깝지 않은 나라, 전부를 걸게 만드는 나라가 하나님나라입니다.
이런 반응은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마지못해 일어나는 반응이 아니라 기쁨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이를 악물고 판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웃으면서 즐겁게 팔았습니다.
기독교는 욕망을 거세하는 종교가 아니라 욕망의 종교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헌신하거나 포기하거나 금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선하고, 아름답고, 기쁘고, 진실된 것을 얻기위해 덜 선하고, 아름답고, 기쁘고, 진실된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비유의 표현대로라면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나라를 발견했습니까? 하나님나라를 발견한 우리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기쁨으로 하나님나라를 소유하고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물비유-가려내는 일은 우리 몫이 아니다. 안에 있다고 안심하지 말아라.
보물과 진주비유를 하고 마쳐도 될텐데 그물비유가 더 들어가 있습니다. 가라지비유와 짝을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왜 심판의 이야기가 여기 붙어 있을까요? 어떻게보면 마태는 의도적으로 여기에 그물비유를 통해 심판의 불과 아궁이 이미지를 붙여 놓은 것 같습니다.
가치가 크면 선택의 무게도 무겁습니다. 전부를 걸만큼 값진 것이라면, 그것을 거절하는 일도 그만큼 무겁습니다. 가장 가치있는 것을 거부하고 덜 가치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안주하며 산 결과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어떻게보면 협박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우리 삶의 무게와 선택의 무게가 큰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안에 들어와 있다고 해서 안심하거나 안주하거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와 자기 점검입니다. 이 비유는 집 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이미 그물 안에 있는, 집 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묻는 물음입니다. 잘 따라오고 있니? 깨닫고 깨달은 말씀대로 살아가고 참고 인내하며 열매맺고 있니?라고 묻는 물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그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의인은 남을 것이고 악인은 걷어냄을 당할 것입니다.
여기서도 가려내고 분리하는 것은 천사들이 합니다. 세상 끝 날에도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사이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서, 그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가라지 비유에서도 뽑지마라 천사들이 가려낼 것이다라고 했듯이 가려내는 것은 천사들이 할 일입니다. 판단은 내 일이 아니지만, 점검은 내 일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사는 이들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오늘 나의 삶을 성찰하고 주님의 길을 묻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걷습니다.
율법학자와 곳간지기- 알게 된 사람은 나누준다.
예수님은 비유를 다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이것들을 모두 깨달았느냐?” 그 물음에 제자들은 “예”하고 대답합니다.
‘깨달았다’라고 하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13장 전체를 하나로 꿰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는 길가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고, 좋은 밭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고서 깨달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깨닫느냐고 물으시고 제자들은 예라고 답을 합니다.
바로 제자들이 ‘좋은 땅’으로 판명되는 순간입니다. 제자들 안에 심겨진 예수님의 말씀은 이후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제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깨달아 마음에 지키어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52절에 ‘훈련받은’이라는 단어는 마테튜오로 제자로 삼아진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서에서 율법학자는 부정적으로 쓰여지지만 여기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제자들, 예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제자들을 이야기해줍니다.
곳간으로 번역된 단어와 44절의 보물이 원문상에는 같은 단어입니다. 보물과 보물을 넣어두는 창고가 같은 단어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살아내는 사람은 곳간(보물창고)에서 나누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꺼내는이라는 단어는 “밖으로 던지다.”라는 의미로 아주 힘 있고 능동적인 단어입니다. 곳간의 보물을 조심스럽게 아끼면서 꺼내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힘차게 퍼내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곳간지기는 인색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주인을 닮아 아낌없이 관대하게 베풀고 나누고 섬기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나라는…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시간에 삽니다.
겨자씨는 이미 심겨졌고 누룩은 이미 반죽 속에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은밀하게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중에 있습니다. 작은 것에서, 은밀한 것에서, 소리 없는 것에서, 보잘 것 없는 것에서 하나님나라를 보고 발견하는 깨어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소란한 것에서가 아니라 조용한 것에서 하나님나라를 들을 수 있는 듣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겨자씨는 다 자라지 않았고, 반죽은 부푸는 중에 있습니다. 그물은 아직 바다에 있습니다. 가라지와 함께 자라고 어려움과 갈등과 고통과 어중간함과 모호함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하나님나라를 발견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존재합니다. 이 기쁨이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힘과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삶이 소망의 인내, 기쁨의 기다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반드시 반죽은 부풀고, 새들은 깃들고 추수때가 이르고 그물을 길어 올릴 때가 옵니다. 이 날을 함께 바라보며 오늘도 서로의 곁을 지키며 살아가는 맑은물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깨달은 사람으로, 하나님나라를 소유한 사람으로 우리의 존재와 삶이 기꺼이 하나님나라를 나누고 베풀고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오늘 우리는 가장 작은 씨앗과 눈에 보이지 않는 누룩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크고 빠르고 드러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작음을 부끄러워하고,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주님, 우리의 흐려진 마음을 새롭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듣는 마음과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허락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평범한 밭에서 주님이 이미 묻어 두신 보물을 발견하게 해주십시오.
병상을 지키는 이들, 오래 기대해온 이들, 알아주는 이 없는 자리를 지켜온 이들에게 오늘 이 말씀이 위로가 되게 하시고, 반죽은 겉으로 아무 변화가 없어도 이미 부풀고 있음을 믿는 믿음을 주십시오.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을 분별하게 하시고, 우리가 궁극의 자리에 잘못 올려 놓은 것이 있다면 정직하게 보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주십시오. 서로를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다만 우리 자신을 살피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발견한 것을 우리만 간직하지 않고, 곳간을 활짝 열어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 가정교회가 그리고 맑은물교회가 지친 이들이 와서 깃드는 겨자나무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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