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이야기/성서일과

2026년 7월 26일 성령강림 후 아홉째주일 성서일과 가해

Flowmgm 2026. 7. 22. 00:13

2026년 7월 26일 성령강림 후 아홉째주일 성서일과 가해

 

우리는 정보는 넘치지만 지혜는 가난한 시대를 삽니다. 검색하면 답이 쏟아지지만,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듣는 마음’은 오히려 희귀해졌습니다. 대화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마음으로 듣기보다 피상적인 들음에 그칠 때도 많습니다. 성서는 그 마음(듣는 마음)을 능력이 아니라 구할 것으로, 곧 하나님께 청하는 선물로 제시합니다.

또한 우리 시대는 오래 살고, 많이 가지고, 이기는 것을 눈에 잘보이고 세상이 가치있다 여기고 성공으로 셈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이 정확히 그 목록(장수·부·원수 갚음)이고, 하나님나라는 눈에 드러나지 않은 숨겨져있는 겨자씨와 누룩과 같고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우리의 바램과 기도의 목록은 시대의 성공 목록과 성서의 이야기와 어디에 더 가까이 위치해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우리는 단절된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스스로 세워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불안 속에 삽니다. 로마서 8장은 그 반대편을 봅니다. 우리의 안전은 성취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끝내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요. ‘어떻게 기도할지도 모르는’ 연약함이 실격 사유가 아니라, 도리어 성령이 일하시는 자리라고 말합니다.

 

이번 주일의 성서일과 본문은 한 가지 질문 위에서 만납니다. “하나님 나라를 무엇으로 알아보고, 무엇으로 살아낼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주시려 하시고(“무엇을 원하느냐”), 그 선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열왕기상에 등장하는 솔로몬은 오래 사는 것도 부유함도 원수 갚음도 아니라 ‘듣는 마음’(레브 쇼메아, לֵב שֹׁמֵעַ)을 구합니다.

시편 119편은 “당신 말씀 밝히시어 빛을 내시니”라며, 열린 말씀이 우둔한 자까지 깨우친다고 노래합니다.

마태복음의 다섯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누룩처럼 작고 숨겨져 있으나, 밭에 감춘 보물·값진 진주처럼 전부를 내걸 만큼 값지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은, 그 나라를 향해 걷는 우리의 연약함(‘어떻게 기도할지도 모르는’ 자리)을 성령이 친히 붙드시고,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구약 열왕기상 3:5-12 (새번역)

5   그 날 밤에 기브온에서, 주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 하셨다.
6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이요 나의 아버지인 다윗이, 진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았다고 해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또 그 큰 은혜로 그를 지켜 주셔서, 오늘과 같이 이렇게 그 보좌에 앉을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7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내가 아직 어린 아이인데도, 나의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주님의 종인 나를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8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곧 그 수를 셀 수도 없고 계산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백성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9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10   주님께서는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마음에 드셨다.
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스스로를 생각하여 오래 사는 것이나 부유한 것이나 원수갚는 것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재판하는 데에, 듣고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요구하였으므로,
12   이제 나는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준다. 너와 같은 사람이 너보다 앞에도 없었고, 네 뒤에도 없을 것이다.

 

열왕기상 3:5–12  |  기브온에서 구한 ‘듣는 마음’

성전이 지어지기 전, 솔로몬은 큰 산당이 있던 기브온에서 꿈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왕위를 막 다진, 아직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젊은 왕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왕이 꿈에 신을 만나 축복을 얻는 이야기는 흔했지만, 이 본문은 그 틀을 뒤집습니다. 솔로몬은 통상의 왕적 복(장수·부·승리)이 아니라 백성을 재판할 ‘듣는 마음’(레브 쇼메아)과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구합니다. 히브리적 지혜(호크마)는 추상적 지식이 아니라, 관계와 현실 속에서 옳은 길을 분별하는 실천적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이 청을 기뻐하시며 지혜를 주십니다.

 

관찰질문.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고 무엇을 구하지 ‘않았’습니까(11절)?

관찰질문. 솔로몬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7–8절)? 그가 어떤 마음으로 청하는지 살펴보십시오.

묵상질문·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나의 첫 대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대답은 솔로몬의 것과 얼마나 다릅니까?

 

 


시편  119:129-136 (공동번역)

129   당신의 언약이 너무나도 놀라워 이 몸은 성심껏 그것을 지키리이다.
130   당신 말씀 밝히시어 빛을 내시니, 우둔한 자들이 손쉽게 깨닫습니다.
131   당신의 계명을 탐한 나머지 입을 크게 벌리고 헐떡입니다.
132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시던 대로 나에게도 얼굴을 돌이키사 불쌍히 여기소서.
133   당신 약속에 힘을 얻어 꿋꿋이 걷게 하시고 악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소서.
134   사람들의 압박에서 이 몸 빼내 주소서. 당신의 법령대로 살리이다.
135   당신의 종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시고 당신의 뜻을 가르쳐주소서.
136   사람들이 당신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니 시냇물처럼 눈물이 흐르옵니다.

 

시편 119:129–136  |  ‘열린 말씀’이 내는 빛

시편에서 가장 긴 이 시는 하나님의 말씀(율법·증거·법도·계명 등 여덟 낱말이 번갈아 등장)을 노래하는 알파벳 이합체(離合體) 지혜시입니다. 이 대목은 히브리어 열여덟 번째 글자 페(פ) 연입니다. 130절 “당신 말씀 밝히시어 빛을 내시니”에서 ‘열림/펼쳐짐’(페타흐)이 빛(오르)을 내고, 우둔한 자까지 깨닫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솔로몬이 구한 분별의 지혜와 그대로 잇닿습니다. 끝 절(136절)의 눈물은 자기 의가 아니라, 말씀을 저버린 이들을 향한 목자적 슬픔입니다.

 

관찰질문.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일을 한다고 노래합니까(130절)?

관찰질문. 136절에서 시인은 왜 눈물을 흘립니까?

묵상질문. 말씀이 내 안에서 ‘빛을 낸’ 순간이 있었습니까? 지금 내가 ‘탐한 나머지 입을 벌리고 헐떡일’(131절) 만큼 사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서신 로마서 8:26-39 (새번역)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27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18)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0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31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26–39  |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성령, 끊을 수 없는 사랑

성령 안의 삶과 구원의 확신을 다루는 로마서의 절정입니다. 고난과 압박 아래 있던 로마 성도들에게 쓰였습니다.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스테나그모스, 알랄레토이스)은 앞서 나온 피조물의 탄식(22절), 우리의 탄식(23절)과 함께 울립니다. 이어지는 ‘황금 사슬’(미리 아심 → 정하심 → 부르심 → 의롭게 하심 → 영화롭게 하심)은 구원의 확신을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에 둡니다. 마지막에(35–39절) 나타나는 환난·굶주림·칼은 초기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마주한 위협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 사랑에서 끊지 못합니다.

 

관찰질문.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지 모를 때, 누가 어떻게 도우십니까(26–27절)?

관찰질문. 바울은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까(35, 38–39절)?

묵상질문. 요즘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나의 탄식은 무엇입니까?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다’는 말이 지금 내 상황에 어떤 위로가 됩니까?

 

 


복음서 마태복음 13:31-33, 44-52 (새번역)

31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된다. 그리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33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올랐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46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
47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온갖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내버린다.
49   세상 끝 날에도 이렇게 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들 사이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서,
50   그들을 불 아궁이에 쳐 넣을 것이니,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것들을 모두 깨달았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예" 하고 대답하였다.
5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는 누구나, 자기 곳간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복음 13:31–33, 44–52  |  작고 숨겨졌으나 전부를 걸 만한 나라

마태의 셋째 강화인 ‘비유의 장’ 일부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작고 숨겨졌으나 걷잡을 수 없이 자라고 퍼지는 하나님 나라를 그립니다(성경에서 대개 부정적 상징인 ‘누룩’을 뒤집어 씁니다. ‘가루 서 말’은 약 40리터, 100명분에 이르는 엄청난 양입니다). 보물과 진주는 그 나라의 값이 전부를 내걸 만큼 크다는 것을, 그것도 ‘기뻐하며’(카라, χαρά) 그리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물 비유는 지난 주일 가라지 비유와 짝을 이루는 종말의 가려냄입니다. 끝의 52절, ‘새것과 낡은 것’(카이나 카이 팔라이아)을 곳간에서 꺼내는 ‘훈련받은(마테튜테이스) 율법학자’는 옛것(율법·예언)과 새것(예수의 가르침)을 함께 품는 이로, 마태 자신의 자화상으로도 읽힙니다.

 

관찰질문. 보물을 발견한 사람과 진주를 발견한 상인은 각각 어떻게 행동합니까(44–46절)?

관찰질문. 겨자씨와 누룩은 각각 처음에 어떤 상태였고,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31–33절)?

묵상질문. 내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라도’ 얻고 싶은 하나님 나라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위해 지금 내려놓아야 할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https://youtu.be/6omVg31H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