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5월27일(금) 벧전2:1-10 큐티 나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가야죠? --영적 성인아이를 경계하라.”
*** 노도와 같이 밀어닥치는 대핍박의 기운 속에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사수하는 길은 제일 먼저 신앙의 기초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튼튼하게 붙잡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점을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제시합니다.
* 특히, 오늘 우리가 맞닥ㄸ린 상황은 이 신앙과 믿음의 기초를 놓치고 산 결과 맞이한 기독교의 쇠락과 신뢰 하락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더더욱 베드로의 권명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 오늘은 어제 못한 본문을 먼저 묵상합니다. 워낙 중요한 본문이라서요...
1. 그리스도인의 길 :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는 것
* 한 생명이 태어나면 어른이 되기까지 성장해가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
* 몸은 자라는데 정서적으로 아이 수준에서 성장이 멈춘 것을 “성인아이”라고 부른다.
* 영적인 거듭남도 마찬가지. 신앙의 연수는 오래되었으나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영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 젖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젖을 먹고서 사는 이는 아직 어린아이이므로 올바른 가르침에 익숙하지 못합니다.”(히5:12,13)
* 교회 내외의 각종 비리와 범죄, 분쟁과 부도덕한, 덕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는 거의 대부분 영적 성인아이가 주범일 때가 많다는 것을 주목해봅니다.
*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영적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까요? 베드로사도는 그 얘기를 들려줍니다.
* <주의> “구원”은 참 범위가 넓은 이야기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이미 구원하셨고, 지금 우리는 구원을 이루기 우해 자라나가고, 마지막 심판 때 주께서 그 구원을 완성해주시는 것. 이 모든 과정을 통 털어 “구원”이라고 부른 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2. 모든 악의와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
*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생활 태도들이 그림자처럼 내게 다가와 유혹하는 것(육체의 소욕, 갈5:16)을 물리치라는 말씀!!
* 이것은 이전에 내가 따르던 것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로 거듭난 지금의 나에게는 아련한 과거의 추억일 뿐, 더 이상 내게 속한 습관이나 내 성품이 아니란 사실!!
*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자기 부인이 바로 이 옛 습관, 옛날 모습을 “저건 내가 아냐!!”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그 습관을 던져버리는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봅니다.
* 특별히 베드로 사도가 버릴 것의 목록으로 예를 든 것들은 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함께 새로운 가족이 되어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새로운 관계 맺기의 민낯에는 이런 어두운 그림자들(시기, 비방, 악독, 위선...)이 불쑥불쑥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의 경험을 비추어봐서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 이럴 때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과거의 생각과 느낌과 행동의 습관을 버리는 것!”
*** 이걸 못 버리고 예 성품 그대로 살다보니 교회 가면 맨날 분쟁과 다툼, 비방이 난무하고.. 그래서 교회에서는 적당히 감추고 사는 게 익숙해져버린 대다수의 교히ㅗ 성도들이 못브이 참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교회 안에서 진실한 나눔이 가능하려면, 먼저 우리가 먼저 십자가에댜 옛 성품과 자아를 제대로 못 박은 사람들, 즉 거듭난 사람들이 되아야 한다는 거라...
3.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 왜? 이를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기 때문!
* 갓난아기들이 젖을 사모하듯,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부터 갖는 게 중요하는 사실! (뭘 먹어야 자라죠.^^)
* 처음에는 젖을 먹다가 조금씩 자라면서는 이유식, 그 다음은 단단한 음식들도 먹어야 자라듯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의 분별력을 따라서 선악을 분별하고 나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삶이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겠죠?(히5:14)
* 이렇게 자라가다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까지, 하나님의 온전하심까지 쭉~~ 자라나가는 겨죠.
***허나, 슬프게도 많은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목사나 중직자라는 분들이 아직 영적 어린아이 수준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걍 어린아이면 좀 낮기나 하지, 영적으로 성인 아이, 역기능에 찌든 병든 사람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에고.. ㅠㅠ.
* 자라나가는 목표가 있는 것도 중요한 일.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 고난과 죽으심, 부활에 동참하여 살아가는 삶”이 삶의 폿대가 되어 살아간다고 고백한 바울처럼(빌3:8-14) 예수님을 닮는 삶이 우리의 최대의 목표가 되어 열심히 달려나가는 것을 결심해봅니다.
* 이 과정에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자라나가는 기쁨을 누리게 되고, 한 번 그 기쁨을 맛본 사람은 또 더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서 더욱 경건의 연습에 힘을 쓰는 사람이 되는 거죠.(v3)
* “내가 자라야만 해!!”라고 결심하지 않아도, 성령을 따라 살다 보면 육체의 소욕을 멀리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이런 성장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갈5:16) 즐겁게 주를 따라 살면서 그 기쁨을 누리고, 또 즐거워서 더 열심을 내고, 또 그만큼 자라나가는 이런 멋진 삶을 꿈꾸며 오늘도 내게 주어진 하루를 성령을 따라 살아가봅니다. 아자~~
4. “돌” 이야기. : 함께 성전 되어감. 제사장으로 살아감
1) “돌” 이야기-건축자의 버린 돌, 모퉁이 돌(톰라이트, ‘에브리원주석’에서)
* 1세기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셔서 성전에 거하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음. 바위, 모퉁이 돌(예루살렘 성전 터와 기초석) 위에 세워질 성전에 대한 기대감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메시아왕국이 임할 것에 대한 소망이 되어있었음.
* 돌(히브리어 eben)과 아들(ben)의 유사성을 갖고서 언어유희(말장난)을 한 것임(예수님이나 바울, 베드로 모두 이런 말장난으로 본문을 인용함).
삼하7:12-14에서는 다윗에게 “너의 아들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심. 따라서, 예수님이나(막12:), 베드로나(v7,8) 시118:22을 인용하면서, “예수님(하나님의 아들)이 모퉁이돌이 되신다. 즉, 성전을 지으실 것이다.”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임. 또 듣는 사람들도 당근 “아.. 솔로몬처럼 자기가 성전을 짓겠다는 얘기구나..”라고 들었다는 사실.
* 건축자의 버린 돌, 모퉁이 돌(시118:22) : 성전(석조 건물)을 건축하다보면, 건축자들이 이건 “쓸모없어!” 라고 버린 돌이 나오는데, 성전 꼭대기나 어느 모퉁이(중요한 부분)를 깃는데, 아까 버린 돌의 모양이 그곳에 딱 들어맞아서, 다시 그 버린 돌을 찾아와서 사용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임~~^^
* 하나님은 당신이 건축하시고 싶은 성전에 예수님이은 당신이 아니면 안 되는(딱 들어맞는 모양) 기초석이 되신 것임.
2) 너희는 성전(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고 있다,(v4,5)
* 살아있는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 되셔서(산 돌) 지어지는 성전에 우리들(하나하나의 돌) 역시 서로 엮여서 한 성전으로 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
* 베드로 사도는 좀 흥분한 상태에서(^^)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성전 얘기를 장황하게 설명합니다.(v6-8) 요약하면, “우리가 성전이 되기 위해 예수님이 그 기초가 되셨는데, 이를 믿는 이들은 그 기초위에 성전으로 지어져가고 있고, 안 믿는 사람들(순종치 않는 사람들)은 그 돌에 부딪쳐 깨지고 만다.” 뭐, 이정도가 되겠죠.^^
* v1-3에서는 각자 영적 어린아이를 벗고 자라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베드로는, 이제 다 같이 공동체가 되어, 그리스도 예수를 기초로 해서(그를 머리로 해서), 그분을 따라 함께 자라나가는 그림을 제시합니다.
* 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 주변 사람들 속에서 극소수의 마이너리티로 살아가고 있었을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 가운데 함께 한 성전, 공동체, 가족으로 지어져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 찾아올 깊은 유대감, 위로, 격려를 한 번 상상해봅니다.
*** 눈만 뜨면 달려 가야 할 직장과 내 삶을 섞고 살아야 하는 다양한 모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내가 속한 내 지역교회가 내게 얼마나 깊고 크게 하나됨의 근거가 되고 있는지, 또 내가 영적으로 자라나가는 모판이 되고 있는지... 철저한 마이너리티였던 초대교회 흩어진 성도들이 가졌을 그 깊은 유대감에 비추어 돌아보게 됩니다.
3) 제사장이 되었다.(v5, 9)
* 다음으로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그 공동체 안에서 택하신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 왕으로 부름받았다고 얘기합니다.
* 다양한 구약적 설명이 가능한 이 단어들, 제사장, 거룩한 나라, 왕. 이 모든 게 압축되어 들어있는 장면이 바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이죠.(출19:5,6) 모든 나라들 중에 이스라엘만을 택해서 불러주신 말들입니다.
*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비유대인들이 포함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이 말을 사용합니다. 전에는 너희가 백성이 아니더니,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호1:10) 말씀하면서...
* 만일 이들이 이런 구약적 맥락을 이해하고 들었다면, 엄청난 감동인 거죠.(당근 이해하고 들었을 것이고_)
* “전에는 내 백성이 아니더니,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이라는 구절을 내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음미해봅니다. 주님이 불러주신 은혜가 참으로 깊게 다가옵니다.
4) 제사장에게 주신 소명 : 하나님께서 하신 아름다운 일(덕)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
* 하나님의 아름다운 가족 공동체, 성전이 되어, 그 가운데 제사장직분을 받은 우리가 공도체적으로 해야 할 것이 바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선포하고, 그가 하신 일을 알리는 것이라구요..
* 구약의 이스라엘이 이 소명으로 부름받았으나, 불순종으로 인해 실패했던 그 사명을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공동체를 통해 이루시고자 한다는 사실!
* 우리 각자가 속한 지역교회 공동체, 다양한 이름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깊이 묵상하고 또 살아가리라 다짐해봅니다.
* 특히 모든게 무너지고 기독교희 기초마저 흔들리는 것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먼저는 각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순전하게 자라서, 다음으로 함께 그리스도 예수룰 머리로 하는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가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지금 이곳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우리를 이렇게 살도록 부르신 하나님의 업적을 널리 전하게 되는 아름다운 삶을 꿈꾸며 오늘도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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